6월 19일 금요일, 공간 채비에서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아래 발바닥행동)의 예약제 후원행사 〈탈시설, 그래도 해야지 어떡해〉가 열린다. 나는 그 준비에 일손을 보태다가 한 가지를 제안했다. 탈시설장애인들의 ‘음식에 대한 목소리’를 모아 보자는 것.
올해 4월 20일 장애인차별철폐의 날, 발바닥행동 활동가들이 그날 함께한 사람들에게 음식 이야기를 물었고, 이후 따로 인터뷰를 이어갔다. 김동림·오재석·박초현·이은혜·이수미·김탄진·박경인·정해선·이인혜·장애경·추경진 — 탈시설장애인 당사자 열한 분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 기록을 읽다가 프랑스의 미식가 장 앙텔름 브리야 사바랭이 남긴 말이 떠올랐다. “당신이 무엇을 먹는지 말해 달라. 그러면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려주겠다.”
그에게 이 인터뷰를 전한다면, 그는 장애인거주시설 안 장애인의 삶을 어떻게 읽어 냈을까. 아마 곤란했을 것이다. 그들의 음식에는 그들이 ‘어떤 사람인지’가 담겨 있지 않았다. 담겨 있던 것은 그들이 ‘어떻게 대해졌는가’였다. 어떤 대우를 견뎌야 했는가였다.
시설의 밥상에서 가장 먼저 사라진 것은 음식의 형태였다. 반찬과 국과 밥은 한 그릇에서 뭉개졌고, 먹기 싫다고 한 것들은 믹서기를 거쳐 나왔다. 씹을 것이 없는 음식을 누운 채 넘기는 일은, 식사라기보다 처리에 가까웠다. 관리하는 쪽에서 빠르고 간편하게 먹이기 위한 일이었다.
밥상에서 먼저 밀려나는 몸도 있었다. 딱딱한 반찬은 잘라줄 손이 없어 목에 걸렸고, 누워 지내는 사람에게는 그렇게 걸릴 만한 음식이 아예 차려지지 않았다. 식사 지원이 필요한 몸일수록 끼니는 가장 늦게 닿았다. 그에게 라면은 늘 맨 끝에 도착해 떡처럼 퍼져 있었다.
그리고 그 밥상에는 거절이라는 것이 없었다. 남길 수도, 싫다고 할 수도 없었다. 매번 같은 단무지, 쩐내 나는 라면, 학교 급식에서 남아 말라붙은 돈가스가 ‘음식’이라는 이름으로 건너와도 군말 없이 비워야 했다. 싫다는 말은 곧장 불평이 되어, 머나먼 나라에서 굶는 사람을 들먹이는 핀잔으로 돌아왔다. 그렇게 싫다는 감각마저 틀린 것으로 교정되었다. 먹는 사람의 입맛이 아니라 먹이는 쪽의 편의가 메뉴를 정하는 곳에서, 끼니는 일상이 아니라 통제였다.
탈시설을 말할 때 가장 자주 돌아오는 반문이 “위험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앞의 풍경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진실은 오히려 그 반대편에 있다. 장애운동에는 ‘위험의 존엄성(dignity of risk)’이라는 말이 있다. 안전을 명분으로 위험을 모조리 없애는 일이 사람을 보호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실패하고 시도하고 성장할 기회까지 함께 거두어 가 버린다는 뜻이다. 과잉보호는 곧 비존엄이다. 자립생활운동의 아버지라 불리는 에드 로버츠는 “최대의 위험이 있는 곳에, 최대의 기회 또한 있다”라고 말했다.
이 말 위에 시설의 밥상을 가만히 포개어 보면, 갈고 자르고 뭉갠 그 모든 처리가 실은 ‘위험을 0으로 만드는 일’이었음이 드러난다. 목에 걸릴까 갈아 먹이고, 손이 가니 고기를 빼고, 사고가 날까 선택을 지운다. 그러나 씹고 삼키고 소화하는 과정은 그 자체로 몸을 쓰는 일이다. 오래도록 갈고 잘게 부순 것만 넘기면 장은 움직임이 줄고, 그만큼 기능이 무뎌진다. 장이 둔해지고 끝내 막히는 일은 그렇게 시작된다. 거꾸로, 시설을 나와 갑자기 일반식을 맞닥뜨린 몸이 소화를 감당하지 못해 위태로워지기도 한다. 모두 한곳을 가리킨다. 위험을 0으로 만들겠다던 그 관리가, 정작 위험에 대처하는 몸의 힘까지 거두어 갔다는 것.
고병권 선생은 칼럼 〈어느 탈시설 장애인의 ‘해방의 경제학’〉에서 이렇게 적었다. 수용시설에도 ‘음식’은 있었지만 그것은 ‘음식’이었지 ‘나의 음식’은 아니었다고. 시설에는 방이 많아도 내 방은 없고, 온갖 습관이 있어도 나의 습관은 없다고. 그래서 사람들은 시설을 나온 뒤에야 비로소 자기 음식을 찾기 시작한다. 탈이 나는 음식을 만나는 일조차 반가워지는데, 그 탈조차 내가 ‘나’를 만나는 일이기 때문이다.
인터뷰 속 사람들이 자립하고 가장 먼저 한 일이 그것이었다. 누군가는 떡볶이를 해 먹고 삼겹살을 굽고, 누군가는 상추에 고기를 싸 먹고, 누군가는 이제야 떳떳하게 술집에서 한잔을 든다 — 시설에서도 술은 있었지만 그때는 늘 몰래여야 했으니까. 누군가가 시설을 나와 가장 하고 싶었던 일은 ‘내가 먹고 싶은 빵을 골라 먹는 것’이었고, 누군가는 비 오는 날 매운탕이 당기면 김치를 원하는 만큼 덜어 먹는다. 먹고 싶은 것을, 먹고 싶은 만큼. 어떤 이는 그 삶을 자유롭고 반짝인다고 했다.
그래서 이번 밥상의 메인은 비빔밥이다. 다만 우리는 섞어서 내지 않는다. 흰밥 위에 색색의 나물과 채소를 따로 얹어 두고, 무엇을 얼마나 넣을지, 비빌지 말지를 드시는 분이 정하도록 내놓는다. 시설은 밥을 섞어서 주었지만, 정작 ‘섞을지 말지 정할 권리’를 앗아갔다. 갈리고 뭉개졌던 그 오랜 밥상에 대해, 우리가 차린 작은 대답이다.
2026년 4월 23일, 「장애인권리보장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처음 발의된 지 10년, 제정을 요구한 지로는 약 20년 만이다. 법 제19조에 자립생활 권리보장을 위한 ‘탈시설화’가 명시되며, 10년 넘게 거리에서 외쳐 온 말이 마침내 법률의 문장이 되었다. 모두가 알듯이, 이것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인터뷰 가운데 결이 다른 목소리가 하나 있었다. 시설 안의 식사를 이야기하는 대신, 나온 다음의 식탁을 어떻게 차릴지 묻는 물음이었다. 영양가 있는 것을 골고루 챙겨야 한다는 것, 요리를 배울 교육과 곁에서 도울 사람이 있으면 좋겠다는 것, 배달음식이 흔한 만큼 더 건강을 살펴야 한다는 것. 그 물음이 우리의 숙제다. 문을 나선 이후의 일상. 내가 차리는 밥상을 함께 나눠 먹는 일상.
올해 발바닥행동 후원의 밤의 이름은 “탈시설, 그래도 해야지 어떡해”다. 지난해 발바닥행동의 스무 돌 슬로건 “탈시설, 마지막 시민을 환대하라!”에서 곧장 이어지는, 이 험난한 운동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선언이다. 무엇을, 얼마나, 비빌지 말지 — 내가 스스로 차리는 밥상. 어쩌면 그것이 ‘탈시설’ 앞에 내가 내놓고 싶은 답이었는지도 모른다.
*이번 후원행사를 준비하며 탈시설장애인 당사자의 인터뷰와 사진을 모아 자료집을 만들었다. 이 글에서 언급한 내용의 원문은 해당 자료집에서 확인할 수 있다. 보다 생생한 언어로 읽어보고 싶다면 행사 당일과 이후에 배포될 자료집을 기대해주었으면 한다.
필자 소개
박주석. 전국장애인건강권연대 정책위원장.
